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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수구 전문가로 활동하는 제이투배관설비 주인장 입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다보면 직업이 바뀌는 순간들이 찾아 옵니다. 특히 모범생같은 모습으로 살다보면 남들이 걷는 안정되고 보장되어 있을것 같은 길을 걷게 되는것이 당연해 보일수도 있는데요~ 저희 학창 시절 때는 단지 적성이나 좋아하는것 보다 좋은 대학을 진학하여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최고 였던 시기였습니다. 음악 미술 체육에 대한 시선은 지금에 비해 여전히 부정적이었던 시기 였습니다.저 또한 그 안정되 보이는 절대적인 길에서 이탈하게 될까봐 노심초사 했고, 제가 하고 싶어 했던 일을 시도 하는것 조차, 부모님께 말씀 드리는것 조차 두려워 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말해 봐야 등짝 스메싱이거든요!아무튼 저희는 그런 시기에 태어 난것 같습니다. 모범생에서~ 하수구 창업까지?저의 커리어는.... 좀 복잡합니다.모범생에서 출발하여 하수구 창업까지!대학 입시 재수 2년 중 하던 공부를 때려 치우고 홍대 인디 밴드 활동을 시작으로 음악인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27살 이후로 생업 전선에 뛰어 들었는데요 수학 자세히 보기 과외, 중등 학원 선생, 드럼 레슨으로 20대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29~30살쯤 기술에 입문하여 처음에는 기계조립 및 설비일을 배웠습니다. 그곳에서 부품 가공 및 용접을 배우며 기술직의 삶을 살았습니다.그 후 용접에 미쳐 전문 용접사로 길을 걷다가허리 디스크가 생기는 바람에 그 좋아하던 용접사도 때려 치웁니다. 그러다 지금 하수구 창업까지~하여 하수구뚫는 사장님으로 살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나에 대한 청사진은 드라마 미생에서 나오는 그런 화이트 칼라의 삶 말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던것 같은데....말이 좋아 블루 칼라지 사실 블랙 칼라의 삶을 살게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행복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절벽에서 뛰어내릴 용기가 없어 그냥 미끄러지듯 살아온게 아닌가 싶네요. 상황에 따라 물 흐르듯 인생을 걸어 왔지만 전 결과적으로 화이트 칼라의 인생과 맞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임은 틀림 없습니다.음악이 좋았다!저는 학창시절 비록 지방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평균 이상 수준의 고등학교를 진학하여 소위 특수반이라는 곳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나름 서울 상위권을 목표로 공부하는 친구들과 안전한 홍익대학교 하수구 방법 함께 공부를 했었습니다. 공부 잘해 좋은 대학 가는것이 절대적인 길이라고 믿고 배웠기 때문에 가슴속에서 메아리 치는 자아의 소리는 꾹꾹 눌러 담아 숨기고 살았습니다. 재수 삼수 시절 촌동네 강원도에서 살다 서울로 올라와 문명을 만나고 부터 젊음의 기운이 용솟음 쳐올르던 시절... 결국 부모님을 이겨 먹어 공부를 때려 치우고 말아버리는 대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당시에도 맞아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할수 있는말이 음악하고 싶다!"입니다.결국 밴드가 하고 싶어 드럼의 길로 뛰어 들었습니다. 사실 드럼은 고등학교때 교회에서 치기 시작했는데 음악에 눈을 뜨고 나서는 공부는 뒷전이요 드럼에 미쳐 있었거든요! 단지 부모님 몰래 좋아 했었고 저 조차도 취미로만 즐겨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결국 그 자물쇠가 열린것입니다. 터져 버린거죠! 그렇게 인디 밴드를 하면서 드럼 레슨을 받고 매일매일 연습에 빠져 살았습니다. 많이 할때는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하며 보내기도 했던 열정이 있었습니다. 집이 망하고 인생이 더 어려워 졌지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였을까?그런 열정이 관련 링크 있어도 지원이 없으면 어렵더라구요!그 당시 집이 망해서 지원도 끊겨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웠는데요... 알바해서 고시원비와 레슨비를 충당하면 수중에 남는돈이 없어 지하철 몇 정거장은 걸어다니는것은 기본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행복할수가 없었네요~홍대의 잼머스 프리버드 이대 퀸라이브홀 긱 라이브 하우스등등 여러 공연을 준비하면서 인생이 그리 즐겁고 재미 있을수가 없더라구요!혼자의 힘으로 실용음악과로 진학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이어 갔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물리적인 연습시간이 모자란것은 어쩔수가 없더라구요! 일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연습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보통 음악은 하루 7~10시간 정도 연습해야 먹고 산다는 말들이 있는데 정말로 그정도 연습을 해야 하거든요...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과 실력차는 점점 나게 되면서 과연 나는 음악인이라는 직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저의 20대 초 중반의 인생은 직업이 음악인이였던것 같습니다. 돈은 못벌어도 내 직업은 음악이다! 라는 자부심? 같은 것이 있었거든요!군대 제대후 드럼 레슨과 효과적인 홍익대학교 하수구 수학 과외로 먹고 살다군대를 24살 10월에 입대 했습니다. 늦은 나이 군대로 입대를 하다보니 탄약고 근무를 설때 마다 제대후 뭘 하고 살아야 할지 걱정이 되었습니다.계속 음악을 하고 싶은데 지원이 없이 하는것이 무리인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였는데... 음악은 절대 포기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제대후 작은 연습실을 얻어 드럼 레슨을 하기 시작했는데 입에 풀칠 할 정도로 유지 할수 있었스습니다. 그러던중 아는 분의 소개로 우연히 동네 학원 초등학교 수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단기 알바 식이였는데 급하게 땜빵으로 들어간 수업에서 저의 또 다른 재능을 발견!헐.... 특히 수학을 이해되기 쉽게 가르칠수 있은 이상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평들이 여기저기 들리기 시작했고 초등을 넘어 중학교 반까지 맡아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가르치는데 재미가 있었지만 중학생 수업은 처음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그 당시 yg의 투애니원이 나올때였는데 우리 학창 시절과는 다른 아이들의 사고 방식이 참 힘들게 했습니다.제 눈에는 그저 개념없어 보였고 쓸데없는 자신감과 복잡한 개성이 참 저를 홍익대학교 하수구 열받게 만들었습니다.제가 크던 시기 보다 더 자유로운 시기 였던 터라 그때의 사춘기 애들을 컨드롤 하는것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사람대 사람으로 만나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어느새 그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어 있더라구요~ 반응이 좋을수록 헐... 이거 완전 재밌는데? 수학과를 갔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드럼 레슨을 할때도 가르치는 재능은 빛을 발했습니다. 제가 인생의 시행착오가 많고 실패가 많다보니 처음 배우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관심이 많았거든요! 무작정 지식을 주입 시키는것 보다 그 사람이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왜 이렇게 연습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가르치다 보니 학원 수업과 드럼 레슨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어 수입이 제법 짭짤 했습니다. 그러다 이 방랑자 같이 불안한 인생에도 꽃이 피는 시기가 오는데요 바로 결혼으로 인한 기술자 인생의 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기술자의 길은 2편에서 하수구 전문업체 J2배관설비입니다.저희 업체는 하수구 막힘 역류 고압세척으로 악성 하수구 막힘 해결을 하고 있습니다#모두의회고 #커리어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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