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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6-10-3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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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수구 전문가로 활동하는 제이투배관설비 주인장 입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다보면 직업이 바뀌는 순간들이 찾아 옵니다. ​특히 모범생같은 모습으로 살다보면 남들이 걷는 안정되고 보장되어 있을것 같은 길을 걷게 되는것이 당연해 보일수도 있는데요~ ​저희 학창 시절 때는 단지 적성이나 좋아하는것 보다 좋은 대학을 진학하여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최고 였던 시기였습니다. 음악 미술 체육에 대한 시선은 지금에 비해 여전히 부정적이었던 시기 였습니다.​저 또한 그 안정되 보이는 절대적인 길에서 이탈하게 될까봐 노심초사 했고, 제가 하고 싶어 했던 일을 시도 하는것 조차, 부모님께 말씀 드리는것 조차 두려워 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말해 봐야 등짝 스메싱이거든요!​아무튼 저희는 그런 시기에 태어 난것 같습니다. ​​모범생에서~ 하수구 창업까지?저의 커리어는.... 좀 복잡합니다.​모범생에서 출발하여 하수구 창업까지!​대학 입시 재수 2년 중 하던 공부를 때려 치우고 홍대 인디 밴드 활동을 시작으로 음악인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27살 이후로 생업 전선에 뛰어 들었는데요 수학 자세히 보기 과외, 중등 학원 선생, 드럼 레슨으로 20대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29~30살쯤 기술에 입문하여 처음에는 기계조립 및 설비일을 배웠습니다. 그곳에서 부품 가공 및 용접을 배우며 기술직의 삶을 살았습니다.​그 후 용접에 미쳐 전문 용접사로 길을 걷다가허리 디스크가 생기는 바람에 그 좋아하던 용접사도 때려 치웁니다. ​그러다 지금 하수구 창업까지~하여 하수구뚫는 사장님으로 살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나에 대한 청사진은 드라마 미생에서 나오는 그런 화이트 칼라의 삶 말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던것 같은데....말이 좋아 블루 칼라지 사실 블랙 칼라의 삶을 살게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행복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절벽에서 뛰어내릴 용기가 없어 그냥 미끄러지듯 살아온게 아닌가 싶네요. 상황에 따라 물 흐르듯 인생을 걸어 왔지만 전 결과적으로 화이트 칼라의 인생과 맞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임은 틀림 없습니다.​음악이 좋았다!​저는 학창시절 비록 지방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평균 이상 수준의 고등학교를 진학하여 소위 특수반이라는 곳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나름 서울 상위권을 목표로 공부하는 친구들과 안전한 홍익대학교 하수구 방법 함께 공부를 했었습니다. ​공부 잘해 좋은 대학 가는것이 절대적인 길이라고 믿고 배웠기 때문에 가슴속에서 메아리 치는 자아의 소리는 꾹꾹 눌러 담아 숨기고 살았습니다. ​​재수 삼수 시절 촌동네 강원도에서 살다 서울로 올라와 문명을 만나고 부터 젊음의 기운이 용솟음 쳐올르던 시절... 결국 부모님을 이겨 먹어 공부를 때려 치우고 말아버리는 대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당시에도 맞아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할수 있는말이 음악하고 싶다!&quot입니다.​결국 밴드가 하고 싶어 드럼의 길로 뛰어 들었습니다. 사실 드럼은 고등학교때 교회에서 치기 시작했는데 음악에 눈을 뜨고 나서는 공부는 뒷전이요 드럼에 미쳐 있었거든요! ​단지 부모님 몰래 좋아 했었고 저 조차도 취미로만 즐겨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결국 그 자물쇠가 열린것입니다. 터져 버린거죠! ​그렇게 인디 밴드를 하면서 드럼 레슨을 받고 매일매일 연습에 빠져 살았습니다. 많이 할때는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하며 보내기도 했던 열정이 있었습니다. ​집이 망하고 인생이 더 어려워 졌지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였을까?​그런 열정이 관련 링크 있어도 지원이 없으면 어렵더라구요!그 당시 집이 망해서 지원도 끊겨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웠는데요... ​알바해서 고시원비와 레슨비를 충당하면 수중에 남는돈이 없어 지하철 몇 정거장은 걸어다니는것은 기본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행복할수가 없었네요~​홍대의 잼머스 프리버드 이대 퀸라이브홀 긱 라이브 하우스등등 여러 공연을 준비하면서 인생이 그리 즐겁고 재미 있을수가 없더라구요!​​혼자의 힘으로 실용음악과로 진학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이어 갔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물리적인 연습시간이 모자란것은 어쩔수가 없더라구요! 일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연습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보통 음악은 하루 7~10시간 정도 연습해야 먹고 산다는 말들이 있는데 정말로 그정도 연습을 해야 하거든요...​​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과 실력차는 점점 나게 되면서 과연 나는 음악인이라는 직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저의 20대 초 중반의 인생은 직업이 음악인이였던것 같습니다. 돈은 못벌어도 내 직업은 음악이다! 라는 자부심? 같은 것이 있었거든요!​​군대 제대후 드럼 레슨과 효과적인 홍익대학교 하수구 수학 과외로 먹고 살다군대를 24살 10월에 입대 했습니다. 늦은 나이 군대로 입대를 하다보니 탄약고 근무를 설때 마다 제대후 뭘 하고 살아야 할지 걱정이 되었습니다.​계속 음악을 하고 싶은데 지원이 없이 하는것이 무리인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였는데... 음악은 절대 포기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제대후 작은 연습실을 얻어 드럼 레슨을 하기 시작했는데 입에 풀칠 할 정도로 유지 할수 있었스습니다. ​​그러던중 아는 분의 소개로 우연히 동네 학원 초등학교 수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단기 알바 식이였는데 급하게 땜빵으로 들어간 수업에서 저의 또 다른 재능을 발견!​헐.... 특히 수학을 이해되기 쉽게 가르칠수 있은 이상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평들이 여기저기 들리기 시작했고 초등을 넘어 중학교 반까지 맡아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가르치는데 재미가 있었지만 중학생 수업은 처음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그 당시 yg의 투애니원이 나올때였는데 우리 학창 시절과는 다른 아이들의 사고 방식이 참 힘들게 했습니다.​​제 눈에는 그저 개념없어 보였고 쓸데없는 자신감과 복잡한 개성이 참 저를 홍익대학교 하수구 열받게 만들었습니다.​제가 크던 시기 보다 더 자유로운 시기 였던 터라 그때의 사춘기 애들을 컨드롤 하는것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사람대 사람으로 만나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어느새 그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어 있더라구요~ ​반응이 좋을수록 헐... 이거 완전 재밌는데? 수학과를 갔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드럼 레슨을 할때도 가르치는 재능은 빛을 발했습니다. 제가 인생의 시행착오가 많고 실패가 많다보니 처음 배우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관심이 많았거든요! ​무작정 지식을 주입 시키는것 보다 그 사람이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왜 이렇게 연습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가르치다 보니 학원 수업과 드럼 레슨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어 수입이 제법 짭짤 했습니다. ​그러다 이 방랑자 같이 불안한 인생에도 꽃이 피는 시기가 오는데요 바로 결혼으로 인한 기술자 인생의 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기술자의 길은 2편에서 ​ 하수구 전문업체 J2배관설비입니다.저희 업체는 하수구 막힘 역류 고압세척으로 악성 하수구 막힘 해결을 하고 있습니다​#모두의회고 #커리어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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